바르비 체헤다
연구조교, 아메다바드 대학교 유산관리센터

인도의 보석 장신구 제작 전통은 선사 시대 하라파 문명의 작업장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금속과 구슬 장신구가 생산되었으며, 과거 오천 년 동안 그 형태, 기법 그리고 상징성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 가장 이른 시기의 구슬과 보석 작업장 중 일부에서는 조각용 끌, 긁개, 원통형 송곳과 미세 송곳과 같은 정교한 도구들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도구들은 보석이나 준보석에 문양을 새기거나 구슬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하는 것들이다. 금판이나 세공이 복잡한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 등을 만들 때 꼬아서 사용하는 금줄과 함께 출토된 이 구슬들이 인도 보석 장신구 전통의 작은 시작점이었다. 보석 장신구는 이후 역사 속에서 지위, 권력 그리고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신부를 위한 보석 장신구는 부를 과시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의 하나다. 보석의 가치는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보석을 다루는 정교하고 까다로운 공예 기술의 수준에서 나온다. 이러한 사례는 담마빠다(Dhammapada) 경전(법구경)에 나오는 ‘비사카(Visakha)의 결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사카는 다난자이(Dhananjay)라고 하는 부유한 재무상의 딸이었다. E.W. 벌링게임(Burlingame)이 팔리어 원본을 번역한 『부처 설화(Buddhist Legends)』(1921)를 보면, “바로 그날, 비사카의 아버지는 500명의 금세공사를 불러 모아 말하기를, ‘내 딸을 위해 최신 유행하는 보석 장신구 한 세트를 만들어주시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번쩍번쩍 빛나는 금화 천 개와 충분한 양의 은, 루비, 산호, 다이아몬드도 함께 그들에게 주었다.” 금세공사들은 넉 달에 걸쳐 11 종류의 보석으로 장신구 세트를 만들었으며, 그것을 매달 바탕 틀을 만드는 데에는 은실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비사카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늘어뜨릴 바탕 틀을 연결하기 위해 “금으로 된 인장과 은으로 된 주형”을 사용하였다. 이 바탕 틀은 공작으로 장식되었는데, 공작의 날개에는 붉게 빛나는 금으로 만들어진 깃털이 달려있으며, 부리는 산호로 그리고 눈은 주옥으로 만들어졌다. 나머지 몸체에는 귀한 보석이 박혀있었다. 이 공예 기술은, “비사카의 머리에 그것을 씌우자 마치 공작 한 마리가 산 정상에 서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수천 개의 깃털이 내는 소리는 천상의 합창이나 다섯 개 악기의 음악연주 소리로 들린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야만 사람들은 그제야 그것이 실제 공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보석 장신구 세트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 재료들은 9천만 루피에 달하며 세공하는 데에만 십만 냥이 들었다.”라고 할 만큼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결혼, 축제 등의 특별한 기간 중 착용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목걸이 © bharatmanoj, kr.123rf.com

『인도의 보석 장신구: 공작의 춤(Indian Jewellery: Dance of the Peacock)』(2001)의 저자들은 인도의 보석 장신구 제작 전통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보석 장신구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은 없지만, 장신구 제작 기술에 대한 증언은 보석학에 대해 잘 설명한 『브리핫 삼히타(Brihat Samhita)』(600 CE)와 같은 논문집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공연예술에 관한 책인 『나티야샤스트라(Natyashastra)』(500 BCE)에는 네 가지 주요 장신구 유형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 문법책인 『아쉬타디야이(Ashtadhyayi)』(500 BC)는 야금학과 광물학에 대한 전문적 정보를 담고 있으며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4 BC)는 국가성립에 관한 개설서로서 금속 공예 산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거창한 장식은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 역시 인간의 부를 함께 나누어 갖는다. 가장 아름답고 복잡한 동물 장신구 사례 중 하나가 ‘네티파탐(nettipattam, 케랄라 주 남부의 사원 축제 기간에 코끼리를 장식하기 위해 사용되는 금판으로 된 호화로운 덮개)’이다. 이 엄청나게 큰 머리쓰개는 대개 금도금을 한 구리나 동으로 만들어지며, 만드는 데에는 자그마치 20일이 걸린다. 이 장식품은 주요 부분을 장식하는 11개의 초승달 모양과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구체(球體), 그리고 약 5,000개의 방울로 이루어져 있다. 각 구체는 특정 신을 상징하며 나머지 방울은 별을 의미한다. 이 머리쓰개는 반짝거리는 다른 소품과 더불어 인도 왕실의 궁극적인 상징인 코끼리를 장식한다.
왕족들은 정복 활동을 성공한 후, 보석을 통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다. 『아르타샤스트라』의 저자 카우틸랴(Kautilya)는, 특히 고대 인도 남부의 다크시나파타(Dakshinapatha)를 다이아몬드, 루비, 진주 그리고 금이 풍부한 ‘최고의 길’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엄청난 부를 누렸던 촐라(Chola)와 판디야(Pandya) 왕조 때 특히 그러했다. 예를 들면, 촐라의 통치자들은 정복 활동을 통해 부를 획득했고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 진주 잡이 그리고 실론(Ceylon, 오늘날의 스리랑카)의 보석 생산자들에 대한 독점권을 차지했다. 그들은 엄청난 규모의 사원, 조각상 그리고 조각상을 꾸밀 장식품을 의뢰했다. 이러한 후원하에 보석 세공사들은 통치자, 궁정, 그리고 사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보석 장신구를 생산하도록 고용되었다. 이제 왕실은 없어졌지만, 남인도는 인도의 금 시장을 주도하면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현대의 보석 장신구 역시 인기가 있지만 오천 년 역사를 지닌 금줄에 달린 구슬의 조합은 여전히 인도 전역의 거의 모든 문화에서 신부를 위한 가장 신성한 보석 컬렉션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가보가 어머니에서 딸로 스트리단(stridhan, stri=여성, dhan=부)의 형식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석 장신구 제작에 관한 지식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이 예술 형식은 국민 간의 커다란 경제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번창해왔다. 따라서 인도가 ‘소네 키 치디야(sone ki chidiya, 황금 참새)’ 그리고 ‘왕관의 보석(가장 매력적인 것)’이라고 불리어 온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