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타 라힘(Reita Rahim)
기획자, 말레이시아 Gerai OA

오랑 아슬리(Orang Asli)족은 말레이시아 반도의 원주민 소수부족이며 인구는 17만 명 가량이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18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체로 유사한 전통 신앙체계(adat)를 공유하고 있다. 오랑 아슬리족은 고지 산간지대와 민물 습지, 해안지대 등 다양한 생태 환경에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 환경은 이 지역 특산의 재료들을 제공한다. 오랑 아슬리족 마을과 그 인근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식물은 흔히 스크루 파인(screw pine)이라 불리는 판다누스목(pandanus fascicularis)으로서 길고 가시돋힌 잎이 무성한 식물이다. 이 지역 여성들은 섬유질이 풍부한 판다누스 잎을 수확, 가공, 염색하여 돗자리, 바구니, 주머니 등을 만든다.

그러나 값싼 플라스틱 돗자리와 다른 상품들이 유입되면서 오랑 아슬리족의 자연친화적인 수공예술인 아냠(anyam)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야생이나 재배된 판다누스 잎을 엮어 만든 전통 공예품은 점차 합성제품으로 대체되고 있다.

전통지식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인식

문자를 갖지 못한 오랑 아슬리족의 전통지식은 구비와 행위를 통해 전승되어 왔으며 수공예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생물의학적 가치에 의해 기록되는 민족식물학의 경우와 달리 수공예와 관련된 전통지식은 심지어 오랑 아슬리족 사이에서도 간과되고 있다.

그간 오랑 아슬리족의 판다누스 세공인들을 훈련, 유지하고 나아가 그들의 기예를 현대적 수요에 맞게 적응시키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다누스 세공과 관련된 전통지식은 머잖아 사라질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랑 아슬리족 장인들이 이 지식 일부를 재발견하여 마을 여성들의 부수입 창출을 위한 방안으로 공유하게 된 점이다. 일부 장인들은 고갈되어 가고 있는 식물자원을 보호하고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전통적 ‘모범사례’를 재학습함으로써 수입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랑 아슬리족의 원로들은 판다누스 묘목을 세우지 않고 눕혀 심으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식재 기술은 판다누스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밖에도 전통지식에 따른 가장 효율적인 수확 방법은 무성한 나뭇잎 덤불에서 일부 잎들만을 수확함으로써 생태적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랫 부분의 딱딱한 잎과 윗 부분의 여린 잎들은 놓아 두고 중간 부분의 잎들만을 잘라낸다. 특히 여린 잎을 잘라낼 경우 줄기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랑 아슬리족의 세공품에 쓰이는 다른 여러 재료들과 마찬가지로 판다누스 또한 잎이 수액으로 충만한 보름 시기에는 수확하지 않는다. 공동체 주민들은 마을 원로들로부터 들은 대로 수액이 많은 완성품은 나무좀벌레를 유인한다는 전통지식에 따라 아직도 이러한 금기를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사라진 이름과 잃어버린 다른 것들

지역의 여러 박물관에는 오랑 아슬리족의 판다누스 세공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종종 간과되는 것은 이들 세공품들이 그것들을 만든 사람들에게 갖게 하는 의미에 대한 인식이다. 일부 문양과 양식의 명칭이 사라지면서 그와 관련된 판다누스 바구니 세공기술은 이미 단절되었다.

특정 문양에 부여된 오랑 아슬리족의 명칭은 이 공예기술의 부락 간, 문화 간 이동 경로를 나타내고 있다. 능직 기술의 유사성에 따라 유사한 문양이 다른 지역에 존재하기도 하나 지역 특유의 문양의 명칭들은 한 부족 역사의 흔적을 희미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파항(Pahang) 지역에 집거하는 스믈라이(Semelai)족의 세공품에서 관찰되는 십자 형태의 탄중 스팟(tanjung sepat) 문양은 이 부족의 고향인 마 므리(Mah Meri) 마을이 속한, 자동차로 약 다섯 시간 거리에 있는 슬랑오르(Selangor)의 탄중 스팟 지역의 명칭에서 따 온 것이다. 한편 마 므리 마을 주민들에게 이 문양은 칼랑 다포르(kallang dapor : 단지 받침)라고 불리운다.

결론적으로 오랑 아슬리족의 판다누스 세공술의 존속을 위한 노력은 마을 여성들에게 그 실천을 장려함은 물론 그들의 공예 유산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 공동체의 소중한 지식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인식시키는 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