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알렌산더 만라파오
교수, 산아구스틴 바콜로드 대학

필리핀의 직물 날염인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 염색인쇄공예가 10세기 혹은 그보다 이른 시기에 시작된 중국과 필리핀 간의 무역을 통해 필리핀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혹은 인근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힌두 영향을 받은 이슬람 이전 문명과 스페인 정복 이전 필리핀 문명과의 상호작용으로 필리핀의 날염인쇄 역사를 추정하기도 한다.
필리핀에서 이 날염 공예는 중국,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의 풍부한 날염인쇄전통과 비교해 볼 때 거의 사라지고 없다. 결과적으로 이 공예는 보석, 도자기, 바구니 그리고 직조 공예와 같은 유명한 토착공예와 함께 번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필리핀 역사에서 직물 날염인쇄를 한 물질적 증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아시아 공예 전통의 증거가 되는 유물은 제한적이거나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전통 중 일부는 보존되어 지금도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힘들게 입수했지만 이는 날염인쇄공예가 필리핀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가롭지만 급속히 성장하면서 활기로 가득 찬 필리핀 중부의 비사얀 지역의 바콜로드(Bacolod)도시의 한 학교에서 예술대학 학생들이 필수 교과목으로 날염인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공예는 날카로운 칼로 문양을 새겨 넣은 고무[구마(guma), 현지 방언]에 물감을 바른 후 직물이나 캔버스에 대고 찍어내는 것이다. 우선 인쇄를 하기 전에 먼저 직물의 네 면을 잘 펴서 평평한 바닥, 주로 책상에 놓는다. 종종 나무로 된 도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문양은 크리스마스 문양이다.
이 예술대학 학생들은 고무를 대신해 종종 감자를 사용하는데 이 기법은 상당히 간단하면서도 고무도장을 사용하는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 감자를 반으로 자른 다음, 자른 단면에 문양을 그려 넣는다. 그 다음 잘 드는 칼로 문양 주변을 동그랗게 잘라내어 감자도장을 만들어 색을 칠하면 된다.

나는 바콜로드의 유명한 예술학교인 라 콘솔라시옹(La Consolacion College, LCC)의 마리 앤 마간티(Mary Anne Manganti)교수와 함께 마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날염인쇄과정은 어떻게 보면 문자를 인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LCC에서 날염인쇄 강의 책임자로 있는 그녀는 필리핀의 동서양 전통이 복잡하게 얽혀진 화려한 문양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 문양은 바바인(Babayin)과 함께 강림절 양초를 반복적으로 새겨 인쇄한 문양이다. 바바인은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라틴 알파벳으로 대체되기 전 타갈로그인이 주로 사용하던 필리핀의 인도 토착민의 문자다.

각 도장은 직물에 찍어내기 전에 하나하나 색칠을 해야 한다. 그리고 ‘토착적인’ 크리스마스 효과를 내기 위해 조각한 문양에 빨간색과 초록색을 칠한다. 그 외의 문양으로는 꽃, 커피잔, 스포츠용품 그리고 과일과 같은 일반적 사물들도 있다. 도시에서 직물 날염인쇄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예술대학을 찾은 것은 상업적 인쇄 중심지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한 나의 단호한 결정이었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쉽게도 현재 필리핀과 바콜로드에는 직물 날염인쇄를 하는 공방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직물 날염 인쇄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지루하고 고된 과정이어서, 일반 대중들에게는 더 이상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필리핀에서 매우 수익성이 좋은 상업적 디지털 인쇄의 도입은 날염인쇄를 한물간 구식의 시장성이 없는 분야로 만들었다.

과거 날염인쇄를 하던 염색 공방이 몇 군데 있었지만, 결국 이 공예는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 공예를 배우기 위해 한동안 전국을 돌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유명한 필리핀의 예술과 공예 안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학교 교육이 우리들에게 직물이나 도예 말고도 많은 토착 예술과 공예가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