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희
㈜프롬히어 대표

누구든 본격적으로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공간(空間, space)’이 필요하다. 사무실, 연구실, 카페 그리고 전승공간이 그렇다. 온전히 작업이 가능한 영역이 확보되어야만 작업의 수준 또한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동 인구, 수요, 임대료, 컨디션, 인프라 등 다양한 조건을 따져가며 공간을 물색한다. 필자가 아는 한 작가는 서울 홍익대학교 부근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번화가인 동시에 문화예술 분야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한 도예가는 경기도 이천시에 공방을 차렸다. 이천은 도자기를 제작하는 공장과 공방들이 모여 마을 하나를 형성할 만큼 도자에 관해 역사성과 밀집성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십 년을 뿌리 내릴 공간은 그 사람의 삶과 개성의 흔적, 그리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를 드러낸다. 이것이 공간이 가지는 힘이다.

신평화 가죽공예가 © ㈜프롬히어

필자는 창업 이후 온전한 공간에 정착하기 위해 세 번의 이동을 하고, 세 번의 리모델링을 했다. 첫 번째는 공유 공간이 있는 청년주택 ‘희희당(喜喜堂, heeheedang)’이다. 전주시 노송동 문화마을에는 1970~1980년대에 지어진 주택들이 많다. 그중 한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실제 거주를 하기도 했다. 때론 집으로, 때론 사무실로, 때론 파티룸으로 썼다. 두 번째는 사회혁신전주의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업무 공간)이다. 사회혁신전주는 지역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중간조직이다. 코워킹 스페이스의 3층은 사회적 목표를 가진 기업들을 위한 공간이다. 지역 청년이자 문화유산 콘텐츠 기업인 우리에게 적합했다. 다양한 네트워킹 모임을 열거나 구성원들끼리 소통하기 좋은 공유 공간이 있는 게 특징이었다. 세 번째는 전주 객사와 공구거리 사이에 있는 현재 사무실이다. 2015년부터 청년문화기획사들을 거쳐, 2021년에 우리가 들어왔다. 입주할 당시에는 하얀 타일과 커다란 창문, 약간은 어두운 부엌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은 회사 브랜드 컬러인 옥색(玉色), 휴색(髹色), 상색(縔色)으로 꾸몄다. 이 공간은 프롬히어의 공간과 시간이자 정체성으로 변화했다.
무형유산은 지역 공동체와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지며, 마땅히 이어질 가치가 있는 문화를 말한다. 그 지역은 아시아 전역일 수도, 키르기스스탄이라는 한 나라일 수도, 마닐라라는 한 도시일 수도, 다랭이마을 같은 작은 마을일 수도 있다. 전승자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마땅한 전승공간을 물색하고, 가꾸고, 쓰며 시간을 물들인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승공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음은 어떨까? 짧게 살펴보고자 한다.

공예가 전소리가 제작한 한지 드림캐처,
소찌제작소 © ㈜프롬히어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악기장 최동식 보유자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현악기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전북 전주시 용머리고개 부근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된 단순한 1층 공방에 선풍기와 장비들이 그의 곁을 함께한다. 여름에는 한없이 덥고, 겨울에는 매섭게 추울 정도로 시설이 노후되어 있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악기장 임선빈 보유자는 1960년대부터 북을 만들었다. 300평 남짓 공간이지만 작업실이나 쇼룸, 창고 등 제대로 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그마저도 재개발 이슈로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다.
한국은 급속도로 사라지는 문화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였다. 직후에 지정된 1세대 무형문화재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1910~1940년대생들이다. 그들은 한정되고 열악한 자원 속에서 생계를 위한 ‘제작’이 가능한 최소한의 공간을 택했고, 매일 작업에 몰두했다. 대다수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작업실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다음 세대 이야기다. 첫 번째는 한지로 드림캐처를 만드는 전소리 공예가다. 꽃이나 지역을 담은 드림캐처를 만들어 눈도 마음도 즐거운 공예품을 선보이고 있다. 소양한지마을, 전주문화재단에서 공예체험일을 하다가 2019년에 자신의 공방을 차렸다. 두 번째는 신평화 가죽공예가이다. 그는 어느 날 가죽에 매력을 느껴 배우기 시작했고, 2017년부터 자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두세 명의 인원이 수강할 수 있는 정도의 개인 작업실이 있고, 더욱 큰 너비의 가죽공예품 쇼룸이 있다. 패션디자인과 출신답게 컵이나 에코백 등 감각적인 소품도 비치되어 있다. 세 번째는 책방지기이자 소설가인 강성훈 작가다. 그는 2013년에 서점 카프카를 열었다. 글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만큼 직접 가구를 만드는 매력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서점에는 책이 진열된 섹션, 글쓰기 및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섹션, 가구를 만드는 섹션과 카페로 구성된다. 그의 서점은 곧 그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오디너리굿즈 © ㈜프롬히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한국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유명한 한강의 기적이다. 강대국의 전략을 빠르게 따라 하고 추진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의 결실이다. 1962년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에서 1979년 1,693달러로 성장했으니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하다. 1990년대, 단어 ‘개성’과 ‘취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준으로 1970년대생부터 시작되는 X세대와 그 이후의 MZ세대가 당사자이다. 생계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무작정 달렸던 1세대 무형문화재들과 달리, 2세대 무형문화재 및 공예가들은 개성과 취향을 추구한다. 2세대들은 조금 더 이유를 선명히 하고 의미를 견고히 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같은 작업이어도 무엇이 조금 더 다른지, 나다움을 내 공예품과 공방에서 어떻게 잘 보여줄지를 말이다. 2세대와 다음 세대는 아래 세 가지를 점점 더 뚜렷하게 추구할 것이다.

• 나만의 스타일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보여주는 것
• 주업과 부업, 주재료와 부재료를 구축하고 결합하는 것에 도전적일 것
• 단순히 잘 사는 게 아닌 ‘나답게’ 잘 사는 방법을 실현하는 것

중요한 점은 나다움을 증명하는 방법에는 자기 수용과 타인 혹은 대중의 반응이 균형 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크게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굳이 보여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와 같은 방향성이 전승공간과 공예품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즉, 전승공간은 제작에 몰입할 수 있는 편리함과 효율성뿐 아니라 전승자의 개성 서사를 뚜렷이 담아야 한다. 문화유산이 담긴 그 공간들은 전승자의 공간이자 축적된 시간이고 지역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