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쉬라이버
바르샤바 대학교 조교수

최근 몇 년 사이에 국가 소프트 파워로서 무형유산이 지닌 역할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졌다(Schreiber 2017, Sargent 2020). ‘소프트 파워(연성권력)’는 서반구에 위치한 미국의 대외정책 맥락과 관련해 고안된 개념으로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1990년에 집필한 저서 《주도국의 운명: 변화하는 미국 국력의 본질(Bound to Lead: The Changing Nature of American Power)》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소프트 파워의 개념이 널리 알려지며 아시아의 문화 정책 프로그램과 외교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고 ‘쿨한 일본(The Cool Japan)’, ‘경이로운 인도(Incredible India)’, ‘자신의 방식대로 한국을 발견하라(Discover Korea, your way)’ 등의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전달하려던 메시지는 국가의 힘이 폭력, 강압, 억지력 등의 경제적, 군사적 잠재력(하드 파워)뿐만 아니라 국가의 매력과 공유 가치에 대한 호소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지프 나이는 한 국가의 소프트 파워가 문화, 정치적 가치, 외교 정책, 이 세 가지 자원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프트 파워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문화이기에 문화에서 필수적 역할을 하는 유·무형유산 또한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지만 21세기 국가들은 한 국가의 국제적 지위나 이미지, 평판 등에 문화가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글로벌 소프트 파워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널리 알려진 개념인 국가 브랜드와도 관련이 있다. 국가 브랜드 순위 조사가 시작된 시점과 소프트 파워 순위가 조사되기 시작한 시점은 거의 일치한다. 2022년 가장 인지도 높은 국가 브랜드 순위 조사에는 엘카노 글로벌 위상 지수(Elcano Global Presence Index), 국가 브랜드 순위(Nation Brands Ranking), 글로벌 소프트 파워 지수(Global Soft Power Index)가 있다. 2022년 국제광고협회 세계정상회의 제목인 ‘브랜드로서의 국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와 브랜드가 거의 동일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국가의 위상을 평가할 때에는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아래 표는 이러한 순위 조사 유형을 보여주는 예시일 뿐이다. 그러나 200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하 2003년 협약)의 아시아 당사국 중 모든 순위 조사 항목에서 상위 20개국에 포함된 국가는 대한민국, 중국, 일본, 인도의 4개국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형유산 학자들의 관점에서 <2022 글로벌 소프트 파워 지수> 중 ‘문화와 유산’ 영역에는 ‘예술과 오락 분야의 영향력’, ‘세계가 사랑하는 음식’, ‘방문하기 좋은 곳’, ‘풍부한 유산’, ‘새롭게 등장한 라이프 스타일’, ‘스포츠 분야 지도자’ 등 흥미로운 지표들이 포함되어 있다.

9/23다양한 소프트 파워/
국가브랜드 지수 상위 20위에
올라있는 2003년 협약의
아시아 회원국 중 일부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 등재
유산의 수
(21년 12월 기준)
2021년 엘카노
글로벌 위상지수
순위
(글로벌)
2021년 국가
브랜드순위
(글로벌)
‘문화와 유산’영역에 따른
2022년 글로벌
소프트 파워
지수 순위
(아시아 지역만 해당)
대한민국 21 12 10 3
중국 34 2 2 1
일본 22 4 3 2
인도 14 11 7 5
싱가포르 1 17 27 4
인도네시아 9 24 15 8

표 1. 2003년 협약 회원국 중 일부 국가의 세계 소프트 파워와 국가 브랜드 지수 순위

2003년 협약은 국가의 소프트 파워를 증진하고 문화 전통과 연행에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발판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이에 여러 국가는 자국의 중요한 무형유산 종목을 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가능하다면 많이 등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편, 소프트 파워 개념에 대한 비판적 재개념화도 이루어졌다. 조지프 나이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구분한 것과는 달리, 한국의 이근 교수는 경성(하드) 자원과 연성(소프트) 자원(아이디어, 이미지, 노하우, 교육, 문화, 전통, 국가적 상징)을 구분함으로써 소프트 파워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이근 교수가 제시한 ‘자원 기반 소프트 파워 이론(Resource-based theory of soft power)’에 따르면 무형유산이란 국가가 다양한 소프트 파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자원이다. 이러한 소프트 파워의 목표는 다음과 같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1) 국가의 평화롭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외부적으로 안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 (2) 외교 및 안보 정책에 대한 다른 국가의 지지를 동원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 (3) 다른 국가의 사고방식과 선호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소프트 파워, (4) 공동체 혹은 국가 공동체 내에서 단합을 유지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 (5) 지도자의 지지율 및 정부에 대한 국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 파워이다.
무형유산 학자와 연행자들은 무형유산이 존중과 이해를 도모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2003년 협약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국가가 전달한 내용이나 2003년 협약에 따른 목표 외에도 여러 국가가 다양한 소프트 파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형유산 자원을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르쉬(Borsht) 요리 문화
© NGO Institute of Culture of Ukraine

최근 시급성을 고려해 ‘우크라이나 보르쉬(Borsht) 요리 문화(2022)’를 ‘무형유산 긴급보호목록’에 등재한 사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달성해야 할 중요한 전략적 목표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즉 국제사회에 전쟁 중임을 상기시키고 현재 극한 위기에 직면한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정체성에 지지를 보내달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보르쉬’가 전쟁으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다거나 긴급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러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보르쉬는 우크라이나 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밖에서도 여전히 인기 있는 음식이다(예를 들어 보르쉬는 폴란드에서 매우 대중적인 음식이며 늘 먹는 수프 중 하나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보르쉬 요리 문화를 무형유산 긴급보호목록에 등재한 것은 이 요리 문화가 실제로 ‘소멸’의 위험에 처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다. 보르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무형유산은 ‘평화롭고 매력적인 국가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외부적으로 안보 환경을 개선(첫 번째 범주)’하고 ‘외교 및 안보 정책에 대한 다른 국가의 지지를 동원(두 번째 범주)’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아시아에서 무형유산은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한 문화 무기로 여겨진다. 무형유산은 국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 외에도 주권을 주장하고 특정 문화의 ‘소유권’을 상징적으로 다른 국가에 상기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처럼 무형유산 등재는 역내 정치적 동맹을 재정립하거나 국가의 경제 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라바쉬 빵(Bread lavash)’ 전통의 중복 등재 사례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2014년 아르메니아의 등재 이후, 2년 뒤에는 아제르바이잔,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튀르키예가 라바쉬 빵을 무형유산 종목으로 등재했다. 아제르바이잔은 ‘국가 공동체 내에서 단합을 유지(네 번째 범주)’함으로써 해당 국가들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라바쉬 전통을 ‘소유’한 다른 국가들이 존재함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음)에 상기시키기 위한 소프트 파워 자원의 목적으로 라바쉬를 활용했다.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한국의 문화 © 한국문화재재단

프트 파워 자산으로서 음식이 지닌 중요성은 ‘김장’ 전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한국이 김장을 무형유산목록으로 등재한 이후 북한 또한 2015년에 김치 담그기 전통을 무형유산목록에 등재했다. 이 경우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김치 관련 종목의 또 다른
‘보유자’로 인정받고 “정부에 대한 국내 지지를 높이는” 것이었다(다섯 번째 범주). 한국의 관점에서 김장이라는 무형유산 자원은 장기적이고 중요한 경제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김치 수출액은 2021년 전년 대비 10.7% 급증하여 1억 5,99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 수치는 2020년 최고 수출실적인 1억 4,450만 달러를 넘어선다. 이러한 경제적 신장은 무형유산 같은 소프트 파워 자원이 하드 파워라 할 수 있는 국가 경제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섯 가지의 소프트 파워 범주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며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의 다양한 순위 조사를 통해 자신들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분석하는 국가들에 있어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양적, 질적 측면 모두에서 높은 순위를 얻고자 열망하게 되는 또 다른 국가 순위이다.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를 차지하기 위한 세계적 경쟁에서 무형유산 자원이 중요한 ‘문화 무기’로 여겨지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고 유지하는 도구인 무형유산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국제 관계의 중심에 놓여있다. 하드 파워의 두 가지 중요한 구성 요소인 경제력과 군사력은 상황에 따라 소프트 파워와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유네스코와 같이 국제적 논의, 지식의 공유, 네트워킹이 가능한 플랫폼의 존재와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와 같은 지역센터는 무형유산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을 해결하고 완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무형유산 및 소프트 파워를 창출하는 무형유산의 역할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지역적, 국가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무형유산을 둘러싼 잠재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Sargent, Sarah. “‘Fractured Resemblances’: Contested Multinational Heritage and Soft Power.”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roperty 27, no. 1 (2020): 97–123; Schreiber, Hanna.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soft power: exploring the relationship.”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Vol.12 (2017): 43–57.
2. Ikenberry, G. John, and Joseph S. Nye.
“Soft Power: The Means to Success in World Politics.”
Foreign Affairs 83, no. 3 (2004): 136.
3. Holden, John, and Chris Tryhorn. Influence and Attraction: Culture and the Race for Soft Power in the 21st Century. The British Council, 2013.
4. Anholt, Simon. Brand New Justice: How Branding Places and Products Can Help the Developing World. Oxford: Elsevier Butterworth-Heinemann, 2006.
5. Geun Lee. “A Theory of Soft Power and Korea’s Soft Power Strategy”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21, no.2 (2009): 205-218.
6. Byun, Jye-jin. “Korea’s Kimchi Exports Soar to All-Time High.” Korea Herald, January 17, 2022.
www.koreaherald.com/view.php?ud=2022011700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