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기
전(前) 관장, 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산중군자 그 경외의 대상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물은 바로 호랑이다. 대한민국은 ‘호랑이 나라’로 호랑이는 전통문화 어디에서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 한반도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 하여 ‘호랑이 나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우정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인류의 대제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호돌이’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수호랑’이 당당하게 마스코트로 한국을 대표했다. 잘 발달되고 균형 잡힌 신체 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렸다.

효와 보은, 영웅의 수호자, 호랑이
호랑이가 설화에서 영웅, 특히 건국시조의 수호자로 등장한다. 견훤이 아직 포대기 속에 싸여 있을 때이다. 그 아버지는 들에서 밭을 갈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밥을 갖다주려고 어린아이를 나무 밑에 놓아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호랑이는 후백제를 건국할 견훤의 인물됨을 미리 알아보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묘사되어 있다. 호랑이는 고려의 왕건과 조선의 이성계 등 건국시조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호랑이는 효의 수호신 겸 후원자로 자주 등장한다. 한성에 사는 박씨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친을 잃은 뒤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선친 묘에 참배하였다. 선친 묘로 가는 어느 날 박씨가 재를 넘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박씨가 자신은 선친 묘에 가야한다고 호통을 치자 호랑이가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박씨를 태운 호랑이는 선친 묘까지 와서 안전하게 박씨를 내려주었다. 집으로 올 때도 이와 같이 하여 삼 년 동안 계속하였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호랑이와 까치 그림 © 국립중앙박물관

곶감이 무서워 도망간 어리석은 호랑이

1988 서울 올림픽 인형 © 국립민속박물관

어느 날 배고픈 호랑이가 인가에 내려와서 사냥감을 찾다가 어린아이가 우는 집에 이르게 된다. 아이의 어머니는 “얘야, 울지 마라. 저기 바깥에 호랑이가 왔다!”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내가 왔다는 것을….’ 순간 호랑이는 긴장하였지만, 바깥에 호랑이가 왔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어대는 어린아이에 더욱 긴장하였다. ‘저 어린애는 동물의 제왕이라는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건가?’ 그런데 이어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말에 어린아이의 울음은 신기하게도 그만 뚝 그친다. “얘야, 울지 마라. 저기에 곶감이 있구나”, ‘곶감? 곶감이 뭐지? 저 어린애는 나보다 곶감을 더 무서워하는 것인가?’ 호랑이는 몰랐다. 사람이 울음을 그치는 이유가 무서움이 야기하는 공포감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또한, 호랑이는 몰랐다. 인간들만이 간식거리로 먹는 곶감이란 음식물의 존재를. 호랑이는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든, 그 무시무시한 ‘곶감’이란 것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을 칠 수밖에 없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속에는 재미있는 호랑이 이야기가 있다. 힘세고 날래지만 한없이 어리석어 사람에게는 물론 토끼나 여우, 까치 등에게 골탕먹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있다. 반면, 호랑이가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사람이나 짐승으로 변신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의(義)를 지키고 약자와 효자, 의인(義人)을 도우며 부정함을 멀리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등장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호랑이, 산신령을 태우고 산천을 호령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인형 © 국립민속박물관

그림 속에서 호랑이는 그 자체의 용맹성과 포악성으로 벽사적 의미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소재들과 결합되면 새로운 상징과 의미를 창출해 낸다. 호랑이와 매가 결합된 그림은 용맹성을 바탕으로 나쁜 기운이나 잡귀의 침입을 물리치는 부적이다. 호랑이와 까치 그림은 새해를 맞이하여 즐거움과 기쁨을 전한다. 호랑이와 대나무 그림은 호랑이 포효와 대나무를 잘라 불 속에 던져 낸 큰 소리로 병귀를 쫓아 버린다. 호랑이와 사람을 함께 그린 그림은 호랑이 자체가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를 상징한다.

호랑이는 액을 물리고 복을 부른다.
호피를 그리거나 수놓아서 그림은 장식 효과뿐 아니라 벽사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호피나 호피 그림를 가지고 있으면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고 벼슬자리를 길이 보전할 수 있다’고 하여 귀히 여겼다. 신부의 신행 가마 지붕에 호랑이 문양을 넣은 담요인 호담을 씌우면 잡귀들이 근접을 못한다. 살아있는 호랑이가 절대적 힘과 용맹으로 잡귀를 물리치듯 죽어서 호랑이 신체 일부로도 능히 온갖 나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 호랑이의 가죽, 뼈, 수염, 이빨, 발톱 등을 장식품, 노리개, 문양 등으로 만들어 몸에 지녔다. 호랑이는 일상적으로 건강과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상징이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슬기 · 의젓함 · 익살을 닮았다.
지금 한국에서 자연생태 속의 호랑이를 실제로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형성된 호랑이에 대한 관념은 지금도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 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되기도 했다.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으면서 싫고, 무서우면서 우러러보았다.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 호랑이는 어느 하나에도 사악하고 표독스러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위엄 있고, 신령스러우며, 해학적이고 인간미 넘친다. 친근하고 따듯한 이런 표정들이 바로 우리 호랑이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모습과 마음, 즉 슬기·의젓함·익살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