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히로츠구(Hirotsugu Saito)
문화재전문가, 일본 문화청 문화재부 전통문화과

닌교 조루리 분라쿠는 가창자인 다유(太夫), 샤미센(三味線) 연주자, 세명의 인형사, 이렇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인형극이다. 16세기 말에 생겨난 분라쿠는 초기에 야외 공간이나 가설극장에서 상연되었으나 17세기 중반부터 오사카, 교토, 에도(현재의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유명한 극장에서 상연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말 다케모토 기다유(竹本義太夫)라는 가창자가 작가 지카마츠 몬자에몬(近松門 左衛門)의 극본들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노래 부분이 적은 그의 가창 방식은 이후 기다유부시(義太夫節)라는 명칭으로 유행하였다.당시까지는 인형사 한 명이 인형 하나를 조종하였으나 18세기 중반 인형사가 셋으로 늘어났다. 인형은 120~150㎝ 높이이며, 수석 인형사가 머리와 오른팔과 오른손, 두 번째 인형사는 왼팔과 왼손, 세번째 인형사는 다리를 각각 조종한다. 머리를 조종하는 수석 인형사가 인형의 전반적인 동작을 통제하며, 이를 통해 기다유부시의 내용과 부합하는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적합한 표현이 가능해진다.

닌교 조루리의 700개 곡목 중 현재 약 170개 곡목이 전승되고 있다. 일부 곡목은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부 작품은 지역민의 삶을 조명한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오락으로 기다유부시를 배워 즐겨 불렀다. 분라쿠에 대한 식견을 갖추게 된 그들은 분라쿠의 엄격한 비평가가 됨으로써 청중의 의견과비평을 통해 분라쿠의 세련화에 기여하였다.

다유와 샤미센 연주자가 기본 기법을 숙련하는 데에는 10년 이상의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한편, 인형사는 우선 인형의 다리와 왼손의 조종기법을 배우며, 수석 인형사가 되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일본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 대중의 감정을 반영하는 걸출한 극본, 세부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음악, 인형의 사실적 표현기법은 분라쿠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외국 극본과 오락거리가 유입되면서 분라쿠의 인기는 줄어들었다. 20세기 들어 극장은 한 곳으로 줄어들었으며, 또한 극단도 하나만이 남아있다. 극단은 분열되었다가 후에 재결합하여 오사카와 도쿄의 극장에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분라쿠의 후대 전승을 위해 일본 정부는 1950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전승자 훈련 프로그램과 공개 공연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 분라쿠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었다. 1966년 도쿄에 국립극장이 설립되었으며, 1984년 오사카에 국립분라쿠극장이 건립되었다.

분라쿠 연행자가 되려는 이들은 도제가 되어 훈련을 받으나, 분라쿠의 인기 하락과 함께 전수생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전수생을 위한 정규훈련 과정이 1972년 도쿄국립극장에서 개설되어 1984년 오사카의 국립분라쿠극장으로 이관되었다. 매년 이수자는 2~3명에 불과하나 현재 활동하는 전문적인 분라쿠 연행자의 절반은 이수자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3년 분라쿠는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포함되었다. 등재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이 분라쿠에 관심을 가져서 이 공연예술의 성공적인 전승이 이루어지고 많은 명인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