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비케니베우 파에니우
투발루 전 국무총리, 농업경제학자

풀라카(pulaka) 경작 문화는 투발루인의 중요 무형유산 중 하나이다. 투발루어로 풀라카, 키리바티어로는 바바이(babai), 피지에서는 비아(via)로 부르며 마샬 군도(Marshall Islands), 코스라에(Kosrae), 폰페이(Pohnpei), 추욱(Chuuk) 그리고 얍(Yap)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풀라카의 학명은 시토르스페르마 차미노시스(Cytorsperma Chaminosis)이며 일반적으로는 ‘습지 토란(giant swamp taro)’으로 알려져 있다. 풀라카는 환초지대 사람들이 토착 뿌리작물에 붙인 이름으로, 피지, 폰페이, 바누아투 같은 화산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바누아투에서는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풀라카를 식량 대신 먹기도 했다.

거름을 잘 주어 키운 이칼라오이 © Matini Vailopa

김매기와 수확 © Matini Vailopa

투발루를 대표하는 무형유산인 풀라카 경작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독특한 ‘풀라카 구덩이’이다. 투발루의 8개 주요 섬의 주 거주지 인근이나 석호 주변 작은 섬에서 이 구덩이를 찾아볼 수 있다. 산호섬 국가인 투발루는 5개의 산호환초와 4개의 지대가 높은 환초로 구성되어 있다. 지대가 높은 환초에는 석호가 없지만 다른 곳에는 작은 섬으로 둘러싸인 석호가 있다.

산호섬 토양은 다공질이며 작물 재배에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투발루인 조상들은 이 섬에 정착한 이래 지하수가 닿는 곳까지 깊이 구덩이를 팠다. 풀라카 구덩이는 약 10m 길이에 폭은 5~10m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는 구덩이 깊이가 지표면에서 10m 정도까지 내려간다.
북쪽에서 세 번째에 위치한 섬인 니우타오(Niutao)에는 ‘테 펠라(te pela)’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바로 전통적인 풀라카 재배지이다. 구덩이 깊이가 지표면에서 약 7~8m까지 내려가는 니우타오의 다른 전통적인 구덩이와 달리, ‘테 펠라’ 깊이는 지표면에서 겨우 1m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투발루 조상들은 어떻게 이 구덩이에서 풀라카를 재배했던 것일까? 그들이 사용했던 재배기술 혹은 어떤 방법으로 구덩이를 그렇게 깊이 팠는지를 뒷받침해주는 명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풀라카 재배법을 살펴보면, 조상들이 어떻게 풀라카를 재배에 적합한 구덩이 속 환경을 조성했는지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알 수 있다.

이칼라오이 파종 © Matini Vailopa

먼저 구덩이를 팔 때는 염분을 함유한 지하수가 나오는 위치까지 판 다음 흑토와 유기물 거름을 바닥에 여러 겹 쌓는다. 유기 거름은 주로 녹색 잎, 썩은 코코넛 줄기와 잎으로 만든다. 수년이 지나면 이 유기물 거름은 풀라카를 재배하기에 매우 좋은 비옥한 토양이 된다. 경작 과정에서는 어떠한 비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 투발루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적인 농업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이 진보하면서 일부 섬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풀라카 구덩이를 지표면에서
약 2m 깊이의 콘크리트 구덩이로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몇 달 후 이 콘크리트 구덩이에 유기물 거름을 넣었는데, 변형한 콘크리트 구덩이는 풀라카 재배를 어느 정도 용이하게 했지만 풀라카 본 줄기의 품질이 전통 구덩이에서 재배한 것과 동일할지 여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풀라카 구덩이 © Matini Vailopa

풀라카 재배는 중요한 전통 농업 기술이다. 투발루에서 이 기술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을 금기시하며 같은 집안 내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것이 전통이다. 즉 각 가족이 그들만의 고유한 비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풀라카 재배 방법이나 형식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풀라카 재배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지만 예전부터 풀라카 재배 ‘장인’이 자신의 재배 방식을 대중에게 알려줄 때조차도 사람들은 “장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비법을 숨기고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제시하는 풀라카 재배에 관한 설명은 필자가 나의 아버지, 형제들과 함께 해왔던 것이며 1980년부터 1984년까지 투발루 농업 감독으로 있으면서 투발루와 다른 지역 주요 풀라카 농부들로부터 습득했던 지식이다.

거름을 잘 주어 키운 이칼라오이 © Matini Vailopa

이칼라오이 파종과 수확 © Matini Vailopa

풀라카 재배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은 독자들에게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재배기술은 아니다. 풀라카는 품종이 매우 다양하지만, 투발루에서는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나눈다. (1) 이칼라오이(Ikalaoi)와 (2) 투아티티(Tuatiti)이다. 이칼라오이는 투아티티와 마찬가지로 품종이 다양하다. 앞으로 설명할 이칼라오이 품종의 재배과정에 대한 설명은 다양한 이칼라오이 품종에 두루 적용된다.

한편 투아티티는 풀라카를 재배하는 구역(공동체의 풀라카 구덩이에서 각 농부의 몫이 한 구역으로 간주됨)에 거름을 주기만 하면 된다. 1년 동안 자기 구역에 거름을 많이 덮을수록 투아티티는 점점 더 크게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유명한 풀라카 재배자들은 자신의 구역에서 생산하는 이칼라오이의 숫자로 등급을 매긴다.

이칼라오이는 거름을 잘 준 티티 (titi: 지하수면까지 파 내려간 약1m의 원형 구덩이)에서 재배되는 주요 작물이다. 파종 단계를 살펴보면 먼저 티티 안에 유기질 나뭇잎 거름을 섞은 짙은 색 진흙 토양을 거름으로 준다. 그 다음 ‘이칼라오이’를 심는다. 파종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칼라오이 새싹 또는 다 자란 작물에서 뿌리(풀라카 작물의 식용 부분)를 잘라내고 줄기를 심는 것이다. 그 다음 지하수면(보통은 단단한 바위 위의 지하수면)에서 유기질 거름 토양을 약 50cm 두께로 덮어준다. 그 후에는 뿌리를 심은 주변을 돌아가며 발로 밟아 땅을 눌러 주어야 한다.

모양이 예쁜 이칼라오이(혹은 카울리 쿠오가. kauli kuoga)를 만드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수확한 작물의 줄기를 지하수면의 경암(암석을 강도에 따라 구분할 때 두 번째로 강한 강도의 암석) 위에 단단하게 심는 것이다. 그리고 발로 땅을 꾹꾹 밟아주면 작물이 항상 튼튼하게 서 있을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 뿌리 중심부 지름이 약 30~50cm 에 이르는 타원형의 예쁜 카울리 쿠오가를 얻는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작물 소유자는 새잎이 나오는 때에 맞추어 거름을 잘 주어야 한다. 그 기술은 집집마다 비밀이지만 일반적으로 풀라카 재배자는 새잎이 난 부분 정면의 땅 아래 약 40cm 주변에 초록색이나 갈색 나뭇잎 거름을 준다. 초록색과 갈색 거름을 선택하는 것역시 집집마다의 비법이 있다.

이칼라오이의 알줄기 또는 덩이줄기가 약 30~50cm쯤 되면 작물주변에 갈색 코코넛 줄기로 지름 1~2m 정도의 울타리를 짜서 설치한다. 이 작업이 끝난 후에는 울타리 안에서 거름을 준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풀라카 재배는 상당히 친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한 경작법이다. 이 전통적인 재배기술은 강력하고 긍정적인 회복력을 지니고 있다.

습지 토란 © ChekTek, www.shutterstock.com 공유사진

끝으로 수확 방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투발루의 무형유산인 풀라카 경작방법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칼라오이는 재배자가 작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수확할 때까지 10년까지도 걸릴 수 있다. 높이가 1~2m 가량 자라는 풀라카 덩이줄기는 중요한 전통 축제에 출품한다. 숙련된 재배자는 썩은 부분이 없고 지름이 50cm 정도되는 알줄기를 수확할 수 있다. 이칼라오이 외에 투아티티는 수확할때 보통 높이가 약 60~70cm 지름은 50cm 정도 된다.

수확 적기는 잎이 3~4개 정도 남았을 때이다. 일반적으로 이칼라오이 재배자는 작물 수확직전 거름 주는 것을 중지한다. 투아티티도잎이 3개가 남으면 수확할 시기가 된 것으로 본다. 재배자는 잎이 3개가 남아있는 작물을 찾느라 자신의 풀라카 재배구역을 돌아다닌다. 게으른 재배자는 그냥 경작지로 들어가 작물에 잎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개의치 않고 수확하기도 하지만, 숙련되고 부지런한 재배자는 잎이 3개가 남은 다 자란 작물을 찾아 수확한다. 잎이 3개가 남은 수확 작물은 ‘페케이(fekei, 굽기 전에 붉은색 토디(toddy)와 풀라카를 섞고 으깨어 구울 때 코코넛 크림을 섞음)라고 불리는 투발루 별미를 요리할 때 사용된다. 전통적인 풀라카 수확 방법은 우리 조상으로부터 대대 로 이어져 온 지속가능성의 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