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다르노 빈친(Pudarno Binchin)
학예사, 브루나이 다루살람 말레이기술박물관

브루나이 다루살람에 거주하는 약 10,000명의 두순(Dusun)족은 전통적인 화전 벼농사를 행하는 농민들이다. 그들은 각각 테투오(tetuwo)라는 원로회의에 의해 관리되는 3~4대(代)의 양계(兩系) 가족을 수용할 수 있는 알라이 가요(alai gayo, 큰 집)라는 공동 가옥에서 함께 생활해 왔다. 원로회의는 통상 샤먼이자 치유사인 남자 원로들과 종교의식을 주재하는 여성 제관(balian) 계층에 속한 테마록(temarok)으로 불리는 여성 원로들로 구성된다. 1906년 시작된 영국 식민통치로 인해 전통 통치제도가 붕괴됨에 따라 현재 이 부족은 작은 촌락의 단독가옥에서 거주하고 있다.

두순족의 테마록 신앙은 매월 소규모 의식(temarok diok)과 매년의 성대한 쌀축제(temarok gayo)로 구분되는 일련의 의식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의식들은 천상계(pagun sawat)에 거주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 존재인 데라토(derato)들을 위무하기 위해 행해진다. 테마록 의식의 기원에 관한 두순족 신화에 따르면 데라토들이 두순족 사람들에게 최초의 볍씨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최초의 볍씨를 받기 전 두순족 사람들은 쌀 대신 숯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두순족의 여제관은 정기적인 테마록 의식을 통해 데라토들을 지상으로 초대하여 사람들을 축복하고 함께 여흥을 즐기도록 한다. 현재까지도 악어 테마록(temarok berayo), 뱀 테마록(temarok lanut), 쌀쟁반 테마록(temarok dulang) 등을 통해 의식적 이름을 부여받은 놀이 형태의 독특한 방식으로 새로 추수한 쌀을 신들에게 공양한다.

테마록 의식과 함께 두순족은 약 40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시람 디탄(siram ditaan)이라는 설창 형식의 구비서사시를 간직하고 있다. 시람은 둠박(dumbak)이라는 북의 장단에 맞춰 연행되는 두순족의 전통 시가이다. 시람은 시람 신디르(siram sindir)와 시람 디탄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시람 신디르는 남성과 여성 창자가 비판적 내용을 전달하는 시가로서 시람 나시핫(siram nasihat, 충고의 노래)이라고도 한다. 시람 신디르는 비판의 대상 인물이 참석한 자리에서 관객들로부터 그 진짜 의미를 숨기기 위해 알레고리와 은유를 활용하여 즉흥적으로 연행된다.

반면 시람 디탄은 데라토에 관한 신화를 묘사하는 설창 서사시로서 대부분 재능 있는 여성 창자가 며칠 저녁에 걸쳐 연행하며 여자 제관이 이를 행하기도 한다. 이 서사시는 데라토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낭만적 생활과 다툼을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는 고대의 관용문구들로 묘사되며 일부 어휘들은 오늘날의 두순족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기도 한다. 시람 디탄을 숙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오늘날 능숙한 창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창자들은 이 서사시를 두순족의 통속어로 구송하기를 선호하며, 이러한 형식을 카타-카타(kata-kata, 구술된 말들, 즉 가창된 시)라고 한다. 두 종류의 시람은 혼인예식, 신축한 집의 ‘청소’의식, 테마록 의식 등의 주요 사회적 모임에서 흔히 연행된다.

이러한 두순족 전통 시람 연행은 현재 사라져가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젊은 세대가 그 전수와 지속에 무관심한 까닭에 두순족의 언어 및 그와 관련된 구전 전통의 보유자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둘째, 두순족의 도시 이주에 따라 브루나이의 현대적 도시 환경 안에서 부족의 전통 습속을 수용할 사회적 공간이 한정되면서 촌락 전통의 존속이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특정 조치와 제약에 따라 두순족 구성원들이 주요 종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로 개종함에 따라 두순족의 전통적 정령숭배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쌀농사에 뿌리를 둔 두순족 전통은 결국 석유산업에 의한 현대 브루나이의 사회 발전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현재 많은 두순족 농민들은 정부나 사기업에서의 안정된 보수를 찾아 쌀농사를 포기하였다. 결국 전격적인 보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이러한 구비전통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