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D. 파딜라(Carmen D. Padilla)
유네스코필리핀위원회 문화위원회, 위원장

필리핀 전역의 토착 공동체들 안에서 전통공예는 한정된 시장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와 비정부기구들은 토착 공동체들을 위한 수익 지원 프로그램에 착수하는 동시에 시장 확대의 가능성을 모색 하고 있다.

삼림남벌대책기구(NTFTF)는 광범위한연구와 현지조사를 수행해 온 비정부기구로서 토착 공동체들을 착취로부터 보호하며, 토지 보유권, 자원관리, 생계에 대한 지원을 제공한다는 이상과 목표를 공유하는 다른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공정거래의 실천을 보장하기 위해 이 기구는 커스텀 메이드(Custom Made)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토착 공동체들이 생산한 수공예품을 통해 그들의 목표를 구현하고 있다. 커스텀메이드는 직물공예와 바구니공예에 적용되는 전통적인 생산체제와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품질을 보장하는 역량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단체의 중요한 방침 중 하나는 바로 환경 보호에 대한 약속이다. 이는 흔히 비정부기구들이 토착 공동체에 접근할 때 공동체가 가진 자연 자원에 대해 순수한 의도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덜어준다.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역할이 일반화된 토착 공동체

내에서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 또한 단체의 중요한 목표이다. 시장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에 힘입어 공예품 생산을 위한 여성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생계를 위한 수익 기회 또 한 확대되었다.

삼림남벌대책기구와 그 부설 단체인 커스텀메이드의 활동을 통해 토착 공동체들은 필리핀 국내외에서 시장성이 높으며 향상된 품질의 수공예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한 예들 중 하나는 필리핀 남동부 민다나오 섬 북부에 거주하는 히가오논(Higaonon)족의 직물공예품이다. 원래 호전적인 씨족과 평화적인 씨족으로 분열되었던 이 토착 공동체는 현재 숲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전통 직물수공예품인 히나볼(hinabol)을 비롯한 다양한 수공예품을 생산하고 있다. 전통직물이 수익의 수단이 되었으나 상업적 이용보다는 전통적 수요가 더 우선시되고 있을 만큼 히나볼은 히가오논족 문화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히나볼은 결혼식, 의식, 집회에서 선물로 통용되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의 선물로도 활용되고 있다.

민도로(Mindoro) 섬의 만기안(Mangyan)족 공동체는 라밋(ramit)이라는 전통직물을 생산한다. 라밋은 부족 여성들에 의해 그지역에서 채취된 목화씨 재료로 제작된다.

여성들은 라밋으로 만든 치마에 발루카스(balukas)라는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 반면, 남성들은 허리에 걸치는 간단한 옷인 바악(ba-ag)만을 착용한다. 오늘날 라밋 제작에는 대량 의류생산업자로부터 사들인 면사, 주로 무명실을 사용한다. 전통직물을 만들기 위해서 버려진 실을 재활용하는 것은 토착적이지 않지만 직물 제조기술은 여전히 토착적인 것이다. 그 외에 만기안족은 부리(buri)야자 잎과 니토(nito) 덩굴띠를 엮어 부족 특유의 문양을 지닌 바구니 제품을 생산한다.

민다나오 섬 남서부에 위치한 주(州)인 마구인다나오(Maguindanao)는 과거에 민다나오 섬 대부분을 지배했던 왕조의 이름이다. 이 지역의 전통직물은 이나울(inaul)이며, 그 양 끝을 겹쳐 꿰매어 말롱(malong)을 만든다. 말롱은 남녀의 치마로 사용되는 전통직물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사롱(sarong)과 비교된다. 말롱은 화려한 색상과 금실 장식 덕분에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즐겨 찾으며, 히나볼, 라밋과 마찬가지로 현대 의상디자이너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필리핀의 이러한 전통직물은 의류는 물론 가방, 가내장식물, 사무용품, 허리띠, 서류정리함 등과 같이 현대적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토산품들의 창조적 활용에 따라 토착 생산 네트워크의 공정무역이 수지를 맞출 수 있게 형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배후지, 고지, 저지대 토착 공동체들이 보다 넓은 세계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오늘날 생계 개선은 물론 자녀를 교육시킬만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필리핀 토착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윤리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침으로서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 주목해야 한다. 전통 방식은 고용에 적용되어 빈곤 감축에 기여해야 한다. 전통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전통을 실천해 온 토착 공동체들이 이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대중적 소비를 위해 전통물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통합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그들의 삶에 절대적인 중요성 을 갖는 전통적 가치와 신념은 보호, 보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