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교수, 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

원무는 둥그런 원의 대형으로 돌며 추는 춤으로 신비로움과 채움, 비움의 끝없는 생성, 회귀의 영원성, 단결과 방어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원무로는 여원무와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승전무, 고무, 동래고무의 원무, 농악에서의 원형춤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도 여원무는 한국의 단오제에서 연희되는 춤으로 250여명의 춤꾼이 세 겹의 원으로 춤을 추는 초대형의 집단원무이다.

음력 5월 5일 단오에 경산 자인에서 행해지는 여원무는 한장군이 왜구를 섬멸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녀 무용수들은 화관, 동남, 무희, 무동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눈부시게 장식된 화관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등장한다. 화관은 그 길이가 열 자(3m)에 이를 정도로 장대해서 춤꾼이 머리에 쓰지 못하고 어깨에 걸친 화관을 잡고서야 겨우 춤 출수 있다.

여원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최문병이 1593년에 지은 시로, ‘지금까지 장군이 일전하고 있어, 단오 때의 여원은 영원히 빛나리’라고 노래한 데서 찾을 수 있고, 정충언이 1765년에 지은 축문에서도 ‘춤이 여원으로 전하니, 지방에 남은 풍속이 있다’, ‘단오에 제사를 드려 해마다 폐하지 않는다’ 등의 구절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여원무를 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록에 의한다면 여원무는 한장군의 무용담과 그 누이로 여겨지는 화려한 꽃 관을 쓴 두 개의 여원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장단에 맞추어 원을 그리면서 추는 춤이다.

여원무는 단오 전날 영신제에서 무녀들과 제관들과 호장행렬이 악사 반주에 맞춰 여러 한묘사당을 거칠 때마다 제사와 굿을 한 후 시작된다. 춤의 시작에 앞서, 13~14세 정도의 무부(巫夫) 남자아이가 여장을 하며, 붉은 치마에 초록 저고리를 입고 두 손에 한 자 가량의 끈을 쥐고 있다. 이들은 여원화의 옆에서 출발하여 중앙으로 나아갔다가 중앙에서 돌아선다. 그리고 그 주위에 여장동남 2인, 군노 2인, 사령 20~30인, 깐치사령 1~20인 등 30~40명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처음에는 원진(圓陣)에서 북과 꽹과리로 구성된 풍악으로 음악이 시작되나 나중에는 원진 밖에 따로 늘어선 무부들의 풍악에 맞추어 전체가 춤을 춘다. 여원무의 중심은 바로 여원화이다. 어린 남자아이가 여장을 하고 중앙으로 나아가 춤을 추고 오는 것을 시작으로 거대한 인간 꽃나무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다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이는 공동체의 단결과 조화의 상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신성성으로 인하여 여원화에는 많은 금기가 따른다. 단오제를 지내기 전에는 꽃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나 단오굿이 끝나는 파장에 가서는 모든 사람들이 풍년, 제액, 치병의 효험이 있다고 믿는 꽃송이를 모두 따 간다. 무희들은 손에 박을 들고 무희와 무동들은 신라의 복장을 한다. 춤에 사용되는 악기는 장고, 북, 꽹과리, 대금이고 가락은 빠른 자진모리장단과 굿거리, 자진모리로 옮겨진다. 이 춤은 화관의 커다란 높이와 연기자가 전신을 꽃으로 가리고 춤은 추는 등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적인 것으로 독자적인 소재와 가락을 지니고 있다.

원무(圓舞)는 인류 문명의 시초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유추된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의 코러스처럼 달빛이 비추는 광활한 자연의 대지 위에서 사람들은 춤과 음악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순수한 행위이자 또 가장 원시적이고 초기적인 공간 형태인 원무를 추었고, 이는 풍부함, 완전성, 안전, 조화, 평화 등을 지키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해, 달, 하늘과 같이 순환에 대한 모티브에서 영향을 받은 우주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