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H. 리브너 박사
 해양문화유산보호협회 MA

태곳적부터 인도네시아의 바다는 이주와 소통을 위한 천혜 의 통로이자 교역로였다. 태평양을 정복한 인류는 천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였으며, 다양한 민족과 문화 간의 어로활동과 교역을 통해 한때는 말레이 세계로 알려진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발전을 이끌어낸 원동력은 페라후(perahu)이다. 페라후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원주민의 항해용 선박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해양유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A pinisi lying off the bridge at Tonrang, South Sulawesi, c. 1937,
Coll# 3807 (colorized) © Koninklijk Instituut vor Taal

인도네시아의 항해용 선박을 구분하는 기준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돛줄(삭구)과 돛이며, 나머지 하나는 선체의 모양과 유형이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페라후 선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피니식(pinisi/peeneeseek/)은 19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던 서양의 스쿠너 케치(schooner ketch)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돛이 7~8개 정도 되는 선박의 돛 구조를 가리킨다. 아직도 피니식의 선체는 전통적 기법에 따라 건조되는데, 이는 근대 서구의 조선공학에는 어긋나는 기법이다. 선체 틀을 만들고 나서 나무판자로 감싸는 방법으로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목재 장부못으로 나무판자를 연결하여 겉 표면을 제작하고 나중에 그 안에 선체 뼈대를 끼워 넣는 방식이다. 피니식은 하이브리드 선박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고유의 돛 배열과 조작방식은 아니지만, 서양식 선박에는 중앙에 한 개만 있는 방향타를 대신하는 두 개의
긴 방향타나 선체와 돛의 조화는 피니식의 특징을 형성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하나의 형식이 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피니식은 타나 베루(Tana Beru)와 아라(Ara) 마을에서 제작되고 있다. 군도 중앙에 위치한 술라웨시(Sulawesi)의 남부 해안에 위치한 이들 마을은 수세기 동안 선박 건조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조개껍질을 짜 맞추던 고대의 예술 전통이 선박의 기물 배치, 길이, 필요한 나무판자의 형태 등을 미리 결정하고, 나무판자를 고정시키기 위한 수백 개의 장부못의 위치와 정교한 뼈대가 들어갈 정확한 위치를 지정하는 청사진으로 발전하였다. 이 지역 최초의 선박은 피니식처럼 배에 밧줄 장치를 할 때, 뱃전판에 나무판자를 추가로 덧대어 확장한 타타 탈리(tatta tally, 세 번 자르기)라고 불리는 설계 방식에 따라 제작된 선체에 다 거기에 맞게 개조한 스쿠너 돛을 달았다. 그러나 로피 살롬퐁(lopi salompong)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계단식 선두와 돌출된 갑판은 최초의 서양 침략자들이 그린 인도네시아 선박과 거의 같은 형식이다. 선박 건조 장인들은 백 년간의 전통을 지속해 왔지만 현재는 새로운 형식의 돛의 추진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좀 더 날렵한 모양을 한 살롬퐁 팔라리(움직이는 살롬퐁)로 개조하였다. 1930년대 말경, 아라(Ara)족 사람들은 ‘네 번 자르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피니식을 개발하였다. 이로 인해 원래 팔라리의 뱃머리에 ‘계단’을 만들던 것을 피하고 후갑판(a-deck)을 잘 연결할 수 있는 훨씬 유연한 나무판자를 활용하여 더 큰 선체를 만들 수 있었다.
현재 원래의 피니식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1970년대 세계 최대의 상업 선단이 엔진 동력을 사용하게 되면서 곧 이어 피니식 엔진에 의존하게 되었다. 엔진이 점차 커지면서 돛은 크기가 줄어들었고, 1980년대 말 그나마 남아 있던 뒷돛대(mizzen)를 단 배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원래 배의 이름이 갖고 있던 의미는 사라졌다. 커다란 돛을 많이 사용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 전통적 경제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력과 임금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발음이 불분명하여 ‘피니식’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된, 그림처럼 아름다운 선박은 현재는 휴일에 임대가 가능한 배로, 돛이 너무 짧아서 돛만으로는 항해를 할 수 없다.
이러한 선박의 대부분은 진짜 팔라리(palari)를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엔진을 프로펠러 회전축과 배 중앙부의 방향타에 꼭 고정시켜야하는데 전통적인 항해용 선체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안이 선미를 사각형으로 만든 선체, 즉 람보(lambo)인데, 이것은 1930년대 중앙부에 방향타가 있는 돛대 한 개짜리 작은 범선에 쓰였던 유럽의 선박에서 형태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람보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형태는 팔라리 또는 살롬퐁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적으로 정확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장부못, 나무판자, 선체의 뼈대 등의 자리는 배의 건조가 시작되기 전에 결정되어야 하며, 형태와 크기는 다양하지만 기
본적으로 늘 같은 콘셉트, 용어, 그리고 해법을 활용한다. 이처럼 복잡한 접근법은 인도네시아 선박 건조기술의 특징이며, 이러한 다양한 적응력은 오늘날과 같이 컴퓨터화된 시대에도 이 전통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다. 최근 남부 술라웨시에 건조된 최대 규모의 선박들은 길이가 50미터가 넘고 적하량이 1000톤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규모의 선박과 더불어 여전히 타타 탈루 양식에 따라 만들어진 작은 파잘라(pajala, 그물 방식의 물고기잡이 배)도 있다. 최근 발견된 7세기와 9세기의 두 척의 난파선에서 보이는 장부못의 위치와 선체의 판자를 배열하는 형태를 비교했을 때, 보로부두르탑에 묘사된 선박의 건조에도 같은 제작과정이 적용되었음이 틀림없다. 항해용 선박의 건조는 무형유산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과 정교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