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한희
원장, 무형문화연구원

남해안별신굿은 한산도, 사량도, 죽도 등 한반도 남부 지방 다도해의 여러 섬에서 열리는 마을굿이다. 남해에는 수백 개의 섬이 밀집해 있으며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섬 주민 대다수는 어업을 생계로 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섬 주민 수는 줄어들었고, 평균 연령은 높아졌다. 그 결과 섬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어려움이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섬에 남은 이들은 섬의 생태학적,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긴밀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을굿 역시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러한 마을굿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매해 열리는 흔한 문화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필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 남해 일부 섬에 존속하고 있는 마을굿은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1987년 한국 정부는 남해안별신굿 보존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남해안별신굿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고, 이에 따라 남해안별신굿 연행자들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정영만은 큰무당이자 보존회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보존회는 무당, 악사, 춤꾼 등 21명으로 구성된다. 마을굿이 열리면 이들이 굿판에 초대되고, 굿판이 벌어지면 무당, 악사, 춤꾼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의 안녕을 위한 의식을 치른다. 이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마을 의식을 준비한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 회원들과 정영만 대사산이 © 함한희

마을 의식은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거행된다. 마을마다 다르긴 하지만 굿판은 2~3년마다 벌어진다. 하지만 사량도 능양마을에서는 10년마다 한 번씩 굿이 열리고,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인 2020년에 마을굿이 열렸다. 굿이 2020년에 열리지 않았다면 능양마을 주민들은 굿을 열기 위해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남해 섬마을에서 굿이 몇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유는 섬 주민들의 경제 사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굿을 거행하려면 마을 수장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추렴해야 한다. 다수의 가정이 돈을 보태지만, 이는 언제나 선택 사항이다.

마을주민들이 마련해 온 제물들 © 함한희

죽도마을에서는 2019년 음력 정월 세 번째 날과 네 번째 날에 별신굿이 열렸다(2020년도에 열린 굿판은 코로나19로 취소됨).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洞祭)의 한 유형으로 400년에 걸쳐 전해진 별신굿이 거행된 것이다. 현재 죽도마을에는 20가구가 남았을 뿐이지만 모든 마을 주민들이 용왕에게 바칠 공양물을 가지고 왔다. 얼핏 보아도 70~80세가 넘는 허리가 굽은 마을의 고령 여성들은 믿음이 강하며 한평생 굿을 연행한 이들로 제단에 무거운 공양물을 가지고 갔다. 이들은 마음을 다해 굿을 보존하고자 애를 썼지만 죽도마을 굿의 미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굿판이 열리는 중에도 노령의 마을 여성들이 속삭이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굿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누가 굿을 하게 될까요? 다음에 바다와 물고기 신들에게 바치는 공양을 준비할 때 제가 여기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누가 알 수 있겠어요.”

남해안별신굿은 실질적으로 신들에게 남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과거 섬 주민들은 별신굿을 정기적으로 거행했다. 섬 주민들 간의 연대감을 도모하고 감사함을 표현하고 위험을 피하며 공동체의 목표를 증진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한 의식이었다. 최근 몇 년 남해에서 굿을 거행하지 않는 섬이 많아지면서 굿은 점차 보기 드문 관습이 되었다. 이런 배경에는 기독교 확산, 인구 감소, 경제적 부담 등 다수의 원인이 있다. 따라서 별신굿보존회가 담당하던 역할과 활동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별신굿보존회는 굿을 공동체의 신앙 행위로 지켜내고, 마을 의식으로 계속 거행하도록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다가 별신굿보존회는 일종의 민속예술로서의 굿을 도시 사람들에게 소개해 왔다. 도심 축제의 공간에서 참여자들을 위해 굿을 연행한다. 나이 든 도시 거주민들은 굿판을 보면서 잃어버린 문화에 대한 아득한 향수를 느끼고, 그 결과 별신굿보존회의 역할과 활동의 지평이 확대된다.
정영만은 큰무당 격인 대사산이이며 별신굿보존회의 회장으로서 굿의 명맥을 잇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누구보다 굿의 존속에 대해 걱정합니다. 저희 집안은 지난 400년 동안 굿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굿은 사라졌겠죠.”(정영만, 무당/별신굿보존회 회장)

도시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바리공주를 소재로 아동극을 만들어서 소규모 공연을 했다. © 함한희

별신굿보존회 회원들도 굿의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내비쳤다.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있다 해도 이러한 문화 환경 속에서 굿을 지켜내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건 굿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는 겁니다. 서구식 교육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굿을 시대착오적 문화로 천대하며 부정적인 미신으로 치부했습니다. 굿을 어떻게 하면 원래의 자리로 되돌릴 수 있을지 연구하고 활발히 연행한다면, 정부와 보존 정책에 기대지 않더라도 굿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모 씨, 남해안별신굿보존회 회원)
표면상 죽도마을 굿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마을의 고령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마을 의식을 치르고 있으며, 진심으로 무당과 보존회 회원들이 주관하는 이 영적인 의식을 지키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큰무당인 정영만의 말에 따르면, “존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간신히 머리만 물 밖에 내놓은 채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지요.”

다행히 별신굿보존회는 최근 신입 회원을 모집해 자체적으로 새로운 방향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어린이용 놀이도 만들고 아동을 대상으로 굿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더욱이 보존회는 남해안별신굿 증진을 위한 다채로운 문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굿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굿과 관련된 수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굿이 한국에서 자본주의와 도시화가 주도한 산업화 속으로 언제 가라앉을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별신굿보존회 회원들은 굿이란 전통 유산을 소멸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