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존 S. 알비나(Corazon S. Alvina)
위원, 국가문화예술위원회
언뜻 생각하면 필리핀 전통 떡인 푸토(puto)는 발효음식에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풍겨오는 냄새를 한번 맡아보거나 한 입 베어 물어 보면 약하지만 기분 좋은 술맛이 느껴지는 신 맛이 난다. 말하자면, 잘 만들어진 푸토는 발효된 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푸토는 두 번의 조리 과정을 거치는데, 먼저 불 없이 발효시키고 다음에 불 위에 올려 찐다.
푸토는 80여 종에 달하는 필리핀 떡 중의 하나이다. 푸토는 아침이나 점식 식사의 일부로 주 메뉴는 아닐지라도 고대 필리핀인들의 신앙이나 관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식문화학자 펠리스 P. Sta. 마리아(Felce P.Sta. Maria)는 “스페인 정복 이전에 신앙의 대상이었던 신들은 이 떡이 없으면 어떠한 제물에도 만족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푸토는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진다. 비록 파시그(Pasig), 비냥(Biñan), 칼라시아오(Calasiao), 마나플라(Manapla) 그리고 카가얀 드 오로(Cagayan de Oro)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들 지역에서 푸토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 가내수공업이며 푸토에 자신들의 마을 이름을 붙인다. 대부분의 푸토는 하얀 색이지만 비냥과 카가얀 드 오로의 푸토는 밝은 갈색이나 베이지색을 띤다.
푸토를 만드는 일은 세대 간 혹은 친족 간에 전수된 조리법을 통해 한 가족이라는 연대 의식을 갖게 한다. 그들만의 다양한 푸토 조리법으로 유명한 집안이 있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과거에 푸토는 지역어로 라온(laon)이라고 하는 1년 묵은 쌀로 만들었다. 갈라퐁(galapong)이라는 걸쭉한 반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쌀을 하룻밤 물에 불려두었다가 길린간(gilingan, 손으로 돌려 가는 화강암 맷돌)에 넣어 갈아야 한다. 쌀을 한 번에 한 숟가락씩 떠서 적당한 농도가 되도록 필요한 만큼의 물과 함께 맷돌에 넣는다. 맷돌로 쌀을 갈 때, 윗돌에 수직으로 붙은 나무로 된 맷손을 잡고 윗돌을 돌리면 맷돌 옆으로 쌀이 걸쭉하게 갈려 나온다. 이것은 맷돌 옆의 움푹 파인 관으로 흘러들어가 모인다. 주전자 주둥이처럼 생긴 이 관에 홈이 있는데 이는 나중에 쌀 갈은 것을 쉽게 쏟아 붓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간 쌀은 발효를 위해 한동안 놓아두는데(요즘은 냉장고를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 3일 정도 두기도 한다. 카가얀 드 오로 지역에서는 하룻밤 동안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 투바(tuba, 발효시킨 코코넛 즙)를 넣는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발효된 반죽을 바나나 잎으로 만든 용기에 옮겨 담고 뚜껑을 덮은 채 반죽이 촉촉하고 솜같이 부풀 때까지 찐다. 조리도구는 예전에는 대나무로 만든 것을 썼지만 오늘날은 양철, 알루미늄 혹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찜통 뚜껑의 모양은 원추형인데 이는 응결된 수증기가 뚜껑의 가장자리를 따라 흘러내리게 해서 푸토 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반죽을 작은 틀에 부어 찌기도 한다. 20세기 초에는 작은 도자기 컵이 사용되었다. 특히 니그로 옥시덴탈(Negros Occedental) 지역에서는 푸토 마나플라(puto manapla)를 만들 때 바나나 잎으로 직경 8센티미터 정도로 찜통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푸토는 전통적으로 두 개를 한 쌍으로 위로 나란히 쌓거나 옆으로 붙여서 내놓는다. 푸토는 큰 것의 경우는 직경이 60센티미터 두께가 4~5센티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것을 재봉실로 네 변이 직선이 되도록 평행사변형으로 자른다. 이렇게 하면 푸토가 속까지 잘 익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푸토는 아니스나 나뭇재 소다를 살짝 발라 풍미를 더한다. 조리할 때 사용했던 바나나 잎은 푸토에 은은한 향을 더 해준다. 푸토는 길거리 행상에서 신선한 코코넛 과육과 함께 널리 판매되는 음식이다.
지금은 필리핀 음식문화에 보편적인 부분이 되었지만 사실 쌀은 필리핀 토종 작물이 아니라 선사시대에 외부에서 전래된 작물이다. 여러 민족들이 여전히 50~70여종의 쌀을 재배하며 그 중 일부는 특정 의례용으로 재배한다. 쌀은 의례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주식이다. 모유 다음으로 아기가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은 암(am)인데 이것은 밥을 할 때 처음 끓는 물 표면에 생기는 녹말성분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식사할 때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에게 김이 솟는 뜨끈뜨끈한 밥만큼 좋은 것은 없다.
쌀은 새 집에 제일 먼저 가져가는 물건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운이 다하지 않도록 쌀독은 절대로 비워두면 안 된다. 농사에 종사하는 공동체의 부모들은 곧 아이가 태어나거나, 수호 성자 축일, 마을 축제, 크리스마스 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날에 쓸 몇 가지 특별한 종류의 쌀을 따로 심는다.
오늘날까지도 지방의 가톨릭 축제에는 쌀자루를 교회에 바치는 경우가 많다. 쌀은 필리핀 기독교 신에게 바치는 선물인데 반해 기독교 이전 신에게 바치는 공물인 푸토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방식을 통해 삶의 은총을 기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