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아
책임연구원, 문화살림연구원
밤섬이란 지명은 섬의 모양이 밤(栗) 모양을 닮았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이에 있는 섬으로 배를 만드는 목수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배 목수들이 밤섬에 모여 살게 된 것은 밤섬 인근인 서강 지역에 조선시대에 선박과 군함을 관리하던 관청인 전함사(典艦司)의 외사(外司) 사수함(司水艦)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는 사람・가축・물자 등을 실어 나르던 운송 도구이며, 이동도구인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태화강 상류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존재했다. 배를 만드는 기술은 나무를 쪼개서 사용하는 원시적 방법에서 쪼갠 나무 사이에 판을 덧붙이는 방법 등을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배는 강과 바다를 건너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고, 많은 짐을 한 번에 실어 운송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배의 이동성과 운송성은 한국 전통문화 내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기도 한다. 죽은 자를 위해 지내는 새남굿에서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이동수단이었고, 마을굿에서는 부정한 것을 실어 보내는 운송수단이었다. 이처럼 배는 이승과 저승 모두에서 중요한 이동수단이며 운송수단으로 인식되었다.

1968년 2월에 밤섬을 폭파했지만, 한강의 흙들이 쌓이면서 다시 섬이 되었다. 매년 추석을 전후 한 날을 잡아 주민들이 배를 타고 들어가 귀향제를 지내고 있다. © 이일용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고 내륙 곳곳에는 크고 작은 강이 있다. 그래서 각 지형의 특성에 맞는 배를 만들어야 한다. 밤섬의 배 목수들이 만드는 배는 첨저형과 평저형이다. 첨저형(尖底形)은 V자 모양으로 배의 깊이가 깊고, 배 밑이 좁은 형태이다. 평저형(平底形)은 U자 모양으로 배의 깊이가 깊지 않고, 배 밑이 넓다. 첨저형은 배의 깊이가 깊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도 전복의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펑저형은 배 밑이 넓어 갯벌이 많은 서해나 수심이 얕은 강에서 다니기 수월하다.

밤섬의 배 목수 이일용이 배를 만드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 © 이일용
밤섬의 목수들이 기억하는 한국 배의 특징은 외판의 고착방식, 나무못의 사용, 댓갈의 사용이다. 한국에서 배를 만들 때 배의 외판을 고착하는 방식은 중국이나 일본의 방식과는 다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배를 만들 때 외판을 고착하는 방식은 판자를 서로 맞대어 붙이는 카벨 방식(carvel joint, 平張)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배를 만들 때 외판을 고착하는 방식은 판자에 홈을 파서 겹쳐 붙이는 클링커 방식(clinker joint, 鎧張)이다. 클링커 방식은 나무를 덧댈 때 밑에 대는 나무의 측면을 ㄴ자형으로 턱을 따낸 후 나무판을 덧대는 것이다. 한국에서 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못은 뽕나무를 깎아 만든 가쇠못과 참나무를 깎아 만든 피새못이다. 가쇠못은 배의 배밑판과 외판을 연결할 때 사용하고, 피새못은 외판과 외판을 연결할 때 사용한다. 댓갈은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새를 메꾸는 삼나무 껍질이다. 삼나무 껍질로 만든 댓갈은 얇고 부드러워 배의 밑판이나 외판의 틈새를 메꾸는데 용이하다. 댓갈로 배의 틈새를 메꿈으로써 배가 물에 닿아도 물이 새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배를 만들 때 클링커 방식·나무못·댓갈을 사용하면 배를 수리해야 할 때 배 전체를 해체하는 것이 아닌 상한 부분만 떼어내어 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일용 기증 유물 도면들-밤섬의 배 목수 이일용은 배를 만들 때는 도면을 따로 그리지 않고, 머릿속의 지식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배 만드는 일을 그만 둔 후 조선(造船) 기술을 잊지 않기 위해 도면을 그려 보관하고 있었다. © 서울역사박물관
밤섬은 서울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1968년 2월 13일에 폭파되었다. 밤섬의 폭파로 주민들은 밤섬 인근 창전동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철도와 자동차의 발전, 도로와 큰 다리의 설치로 인해 배를 이용한 이동과 운송에 대한 효용성이 감소하였다. 밤섬에서의 이주와 배의 효용성 감소는 배 목수들에게 위기였다. 이로 인해 배 목수들은 집을 짓는 목수들로 전향하였다.
밤섬과 밤섬 사람들, 그리고 밤섬의 조선 기술은 잊히고 단절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년 2번(음력 1월 2일과 추석 전후) 창전동과 한강에 새롭게 조성된 ‘밤섬’에 모여 ‘밤섬부군당굿’을 지낸다. 이때 사람들은 밤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밤섬에서 전승되던 무형의 여러 지식들(채빙, 강에서 고기잡이, 생활 지식, 조선 기술 등등)들을 공유하고 전승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동화책, 박물관 전시, 미술 전시, 영상, 신문기사 등의 형태로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밤섬과 밤섬의 무형 지식들은 밤섬이란 공간이 아닌 밤섬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고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밤섬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시던 신을 창전동으로 모셔와 제를 지내는 곳. © 이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