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혁
전문관,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Martial’이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에서 유래한 것처럼, ‘martial arts’(무예)는 흔히 ‘싸움’과 동일시 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인식으로, 그 배경에는 미디어 및 오락산업과 결부되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격투기 스포츠가 미친 영향이 크다.

태권도 시연 © ICM

무예는 단순히 ‘싸움 기술’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넘어 인류의 중요한 무형유산이다. 무예는 무용, 의식 그리고 민속놀이와 같은 수많은 비 격투 요소를 포함한다. 이러한 다양성을 고려해 유네스코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범주와 개념에 따라 몇몇 무예를 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최근 사례로는 2020년 12월 중국 태극권이 유네스코 무형유산대표목록에 공식 등재되며, 신체·정신 건강 증진을 위한 전통 관습으로서 태극권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대표목록 등재와 같은 제도적인 인정은 무예를 무형유산으로서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활성화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발맞춰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International Centre of Martial Arts for Youth Development and Engagement under the auspices of UNESCO, ICM)는 무형유산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무형유산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다채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예 시범사업이다.

2019년 ICM은 브라질의 카포에이라(capoeira), 캄보디아의 보카토(bokator), 중국의 우슈(wushu), 필리핀의 아르니스(arnis), 한국의 택견과 태권도, 말레이시아의 실랏(silat) 등 세계 각국 고유 무예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시범단을 조직했다. 이들 모두는 자국의 전문 무예 단체에서 활동하며 10년 이상 무예를 연마해온 전문가들이다. 이들을 필두로 하여 무예의 다양성과 무형유산으로서 진정한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무예를 현지 수련자들이 직접 선보이며 협력하도록 했다.

시범 공연은 예술과 문화축제, 스포츠 및 무예 경기대회, 전시회 그리고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수많은 지방정부와 당국의 초청을 통해 성사되었다. 시범단은 이따금씩 화려한 무대에 올라 수천 명의 관객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고, 때로는 거리에 모여 있는 소수의 행인들과 좀 더 친밀하게 교류하기도 했다. ICM은 이를 통해 무형유산 다양성에 대한 인식 제고 수단으로 여러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는 무예의 잠재성을 재확인했다.

우슈를 배우고 있는 어린이들 © ICM

시범 공연에서는 각 종목마다 한 쌍의 무예인들이 순서에 따라 준비한 무예동작을 보여주었다. 실랏은 동물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는것이 특징이며 종종 짧은 막대기나 단검으로 무장하기도 했다. 우슈연행자들은 창이나 칼을 들고 곡예적인 기술을 뽐냈다. 택견의 독특한 발과 손의 움직임, 그리고 흐르는 듯한 동작은 다른 어떤 무예와도 달랐다. 뒤를 이어 태권도 공연자들이 마치 한 사람처럼 완벽하게 발차기 동작을 선보이면서 공연은 절정에 다다랐다.

시범단원들은 서로 다른 무예가 어우러지는 모습과 전투 장면을 함께 묘사하며 문화 간 교류와 조화로운 공존을 표현했다. 단순히 능숙하고 이목을 끄는 움직임과 기술뿐만 아니라 전통 복장, 의식, 기도 그리고 음악과 같은 다양한 문화적 요소(cultural manifestations)를 함께 선보였다. 예를 들면 캄보디아 무예인 보카토(bokator) 선수들은 크라마(krama, 목도리)를 허리에 두르고 상바(sangvar, 실크끈)를 머리와 양쪽 팔 이두근에 두르는데, 이러한 복장은 고대 크메르 군대
의 유니폼으로 알려져 있다.

카포에이라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 ICM

공연은 보카토 선수들이 무릎을 꿇고 짧은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카포에이라 공연자들이 합동으로 이 의식을 치르면서 시작하는데, 그들은 카포에이라를 상징하는 두 가지 악기인 아타바크(atabaque, 북)와 베림바우(berimbau, 활 모양의 타악기)를 연주했다. 카포에이라는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로 끌고 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투쟁과 저항에서 유래한 무예로,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이 가진 정체성의 정수가 악기 연주 안에 녹아있다. 특히 베림바우 소리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 짓고 한탄했던 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1,2 국가의 억압 하에서, 카포에이라는 전형적인 격투 체계라기 보다는 중요한 음악적 요소와 연결되어 춤, 놀이 그리고 의식이 혼합된 형태로 발전했다. ICM은 공연에서 무예인들이 보여주는 역동적인 신체 표현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함께 전달하며 관객들이 무예의 정수를 더욱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시범 팀은 각 무예마다 공연에 이어 관객들에게 핵심 동작과 무예에 담긴 정신을 가르쳐주고 동작을 겨루어보도록 함으로써 관객과 소통했다. 참가한 관객이 직접 무예를 배우고, 실천하며 널리 보급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경험과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무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과 경험을 확대하는 것은 주목받지 못했던 종목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노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무형유산 보호가 국제사회를 포함한 수많은 이해당사자의 지원 하에서 이뤄지는 지속적인 전승에 달려있다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3

이 프로젝트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ICM은 공연 후에 조사를 시행했다. 응답자의 인구학적 정보는 관객층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어린이와 노년층이 전체 응답자의 약 46%를 차지했다. 무형유산 전 승에서 젊은 층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청소년 참여와 세대간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3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86% 로 나타났으며 전체적으로 긍정적 응답이 97%가 넘었다. 특히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앞으로 무예 활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일부 교란 변수가 이러한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만 공연과 체험활동의 기획과 시행, 그것이 주는 영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대체로 이번 프로젝트는 무예 증진과 문화 다양성 유지에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기여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72개 지역 축제에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대상으로 세계 무예 유산의 가시성을 증진시키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더욱이 이번 공연은 무형유산 보호 활동에서 향후 핵심적인 역할을 할 어린이와 청년을 포함해 폭넓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풀뿌리 단계에서 시행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전통무술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 © ICM

프로젝트를 통해 관객들은 공연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경험 많은 무예인으로부터 직접 무예를 배우고 수행할 드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무예에 담긴 뿌리 깊은 문화 정체성과 특징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범 활동이 지속된다면 무형유산 전승을 위한 더 큰 조직적·제도적 지원을 이끌어냄으로써 무예의 부가 가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프로젝트가 무예 전문가들의 직업적, 개인적 발전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향후 강사, 공연자, 학자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치 있는 무형유산의 보유자로서 경력을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예 시범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ICM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무예 전승을 지원하고, 나아가 문화 다양성 보호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참고문헌
1. Ilari, B. (2002). “Musical instruments of Brazilian capoeira: Historical roots, symbolism and use.” Journal of the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 112(5): 2265.
2. Lewis, J. L. (1992). Ring of liberation: Deceptive Discourse in Brazilian Capoeir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 UNESCO (2021). “Transmission.” Available at https://ich.unesco.org/en/transmission-00078 (accessed 14 February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