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디즈 카지에바
‘크리에이티브 스파크(Creative Spark)’ 프로그램 멘토
오윤 크리에이티브 집단 연구진

키르기스스탄의 전통 식량 체계에서 일반 대중이 쉽게 구할 수 있던 음식에는 동물의 젖을 이용한 유제품이다. 중앙아시아, 알타이, 남시베리아 사람들이 먹던 유제품과 마찬가지로 키르기스인들의 유제품 또한 매우 다양하다. 키르기스인들은 양, 소, 암말의 젖을 사용해 유제품을 만들었으며 이보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염소와 낙타의 젖도 사용했다. 키르기스스탄의 톈산산맥, 알라이산맥, 팔미르고원 사람들은 높은 지방 함량을 특징으로 하는 야크젖을 사용해 유제품을 만들었다. 키르기스인들이 전유를 섭취하는 경우는 제한적이었으며 주로 아이들을 먹이는 용도였다. 실제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전유를 먹이며 때로는 약이나 영양 공급을 목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코티지 치즈를 섞은 전유를 먹이기도 한다.

만질리-아타(Manzhyly-Ata) 근처 이시크-쿨(Issyk-Kul) 호수 위의 하늘 ⓒ Zhyldyz Kazieva

동물의 젖은 일반적으로 착유 직후 여과장치에 거른다. 마유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동물 젖은 열처리를 거친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특히 더운 날씨에 가공하지 않은 동물 젖으로 아이란(ayran, 요거트 음료)을 만들었으며 소량의 물을 첨가해 음료처럼 마셨다. 이러한 유형의 아이란은 많은 곳에서 인기가 있었다. 아이란은 추가 가공을 통해 수즈마(suzma, 요거트 치즈)와 쿠루트(kurut, 사워 치즈)로 만들어진다. 수즈마를 이용해서는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인 찰라프(chalap)를 만들고 쿠루트는 겨우내 두고 먹기 위해 대량으로 저장한다.
쿠루트는 건조시켜 먹거나 따뜻한 물에 으깨어 먹었다. 수즈마 또한 두고 먹을 용도로 저장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수즈마를 소금에 절인 후 차나치(chanachi)로 알려진 가죽 부대에 부어 물기를 제거했다. 일반적으로 수즈마는 태양이 강하지 않은 늦가을에 준비되기 때문에 느린 건조 과정을 거친다. 겨울에 가죽 부대에 담긴 채로 언 수즈마는 맛이 변질되지 않는다. 때로는 이러한 수즈마를 수즈마 카틱(suzma katyk)이라고 불렀다. 수즈마 카틱은 케스메 코제(kesme kozhe), 자마 코제(zharma kozhe), 우즈메 코제(uzme kozhe, 반죽에 사용)와 같은 뜨거운 요리에 풍미와 영양을 더하는 재료로 추가되었다.
고형 유제품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음식은 물론 쿠루트이다. 쿠루트는 소, 양, 염소, 야크젖으로 만들며 키르기스스탄의 모든 집단에서 동일한 기술을 사용한다. 특수 용기에 아이란을 걸러 얻어진 덩어리를 압착하고 커다란 냄비에 부어 소금을 넣은 후 고르게 섞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두부 질감의 덩어리를 작은 공 형태로 만든다. 이후 특수 장치, 즉 튼튼하고 강한 실로 짠 갈대 매트에서 건조시킨다. 건조한 공 모양의 쿠루트는 특수한 부대에 모아 겨울과 봄 내내 저장한다.

식탁에 차려진 키르기스스탄 요리 과정 ⓒ Zhyldyz Kazieva

키르기스스탄에는 카이낫칸(kainatkan) 쿠루트와 투즈달간(tuzdalgan) 쿠루트, 두 종류의 쿠루트가 있다. 둘의 유일한 차이점은 첫 번째 방법에서는 두부 질감의 덩어리를 끓여 쿠루트를 얻는 반면 두 번째 방법에서는 끓이지 않는 것이다. 쿠루트는 때로 몇 년 동안 보관하기도 하지만 맛이 변질되지 않는다. 부유한 목장들은 보관하고 먹을 용도로 쿠루트를 대량으로 만들어 저장했다. 이로 인해 ‘황마의 해(years of jute)’로 알려진 여름의 심한 건기에 수확량이 감소하거나 평소보다 더 많은 가축을 잃더라도 식량 부족에 대한 걱정 없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쿠루트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매우 강하다. 또한 냉장고에 넣지 않더라도 변질 걱정 없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사실 제대로 만들어진 치즈는 8년 정도는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쿠루트의 건조함과 단단함의 정도는 저장 시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쿠루트를 보관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캔버스 자루에 담아 어둡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걸어두는 것이다.
고대부터 우유와 유제품은 키르기스인들에게는 순결의 상징이었다. 고산지대의 사람들에게 흰색은 생각과 행동의 순수함, 자연에 대한 순수한 태도, 즉 자연과의 조화를 상징했다. 그리고 우유 및 유제품 관련 지식의 전승은 자연에 대한 오랜 지식과 존중을 전승한다는 의미였다. 전통적으로 키르기스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우유를 팔지 않았다. 보름달이 떴을 때 하얀 우유를 달빛에 노출시키는 것도 좋지 않은 일로 여겨 저녁에는 이웃에 우유를 배달하지 않던 전통이 있었으며 일부 시골 지역에서는 이러한 전통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쿠루트를 햇볕에 말리는 일은 열과 빛의 에너지를 받는다는 의미로 태양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평등하고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이나 손님에게 디저트를 대접하는 것과 같이 키르기스인들은 가족을 특별하게 대접한다는 의미로 식탁에 쿠루트를 올려 놓는다. 이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쿠루트가 일상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쿠루트는 한국의 김치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요리에 사용된다.
쿠루트는 높은 산, 순수한 봄의 에너지, 태양의 상징이며 알라투(Ala-Too) 산맥처럼 순수한 흰색이다. 키르기스인들에게 쿠루트는 어린 시절의 맛이며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오랜 전통을 의미한다.